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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ssolve 23-24 - untitled, 2024, Enameled copper, installation
Lee Kwang Ho Yesterday is Tomorrow Mar 07 – Apr 30, 2024 | Seoul

리안갤러리 서울은 2024년 3월 7일부터 4월 30일까지 현대미술작가 이광호의 개인전 Yesterday Is Tomorrow를 개최한다. 4년 전 같은 공간에서 가졌던 첫 개인전 가 ‘칠보’라는 미디엄의 위엄을 알리는 데뷔 무대였고, 2021년 리안 대구 개인전 이 ‘매듭’의 한계를 밀어내는 실험 무대였다면, Yesterday Is Tomorrow는 그간 우리가 이광호를 보아 온 관점을 뒤집어버리는 반전 무대의 성격이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찌그러진 금속 매쓰로 즐비하다. 바닥에 세워져 있거나, 벽에 걸려있는 이 물체들의 형태는 폐차장에서 건져낸 파운드 오브제를 방불케하고, 색이나 질감은 테마파크에서 본 적 있는 공룡의 침식된 플라스틱 피부를 생각나게 한다. 혹자는 대형 숯덩어리에 그래피티를 시도한 혼합 매체 실험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이 작품들이 일으키는 궁금증은 캡션을 확인하는 순간 충격으로 전환된다. ‘적동과 칠보’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구리와 칠보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몽타쥬 하여 얻어진 이 유사-광물들은 ‘디졸브 시리즈’라는 설득력 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 쇼트를 또 다른 쇼트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게 하는 영상 편집 기법처럼, 동판과 칠보, 칠보와 칠보가 서로를 삼투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명 Yesterday Is Tomorrow는 ‘어제’와 ‘내일’이라는 상충되는 시간성을 등치시켜버린다. 반면 신작(내일)과 구작(어제)의 관계 설정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디졸브 시리즈’는 구작이 오버랩 되는 신작이라기 보다는 구작이 오버랩 되지 않는 신작이어서, 재료 면에서는 과거의 연속이지만, 기법 면에서는 단절에 가까운 방향전환을 보여준다. 2010년대 초중반의 ‘Skin’, ‘Moment of Eclipse’ 연작, 후반의 ‘Shape of River’, ‘Composition in Blue’ 연작을 통해 이광호는 국내외 미술 및 디자인 씬으로부터 동판과 칠보 다루는 솜씨를 공인받았다. 하지만 동판에 틈을 내 칠보를 끼워넣는 기법은 이번 전시에서 자취를 감췄고, 구리와 유리는 상호보완적 성격을 상실하여 하나의 구리-유리 유기물이 되는 아말감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광호의 방향전환은 형태 면에서 드라마틱하다. 이를테면 큐브는 실린더(원통), 구체(볼)와 함께 이광호의 시각언어를 바닥에서부터 지지하고 있는 주춧돌이었다. ‘Obsession’ 시리즈의 ‘나일론 스툴'은 거듭되는 매듭에 의한 입방체의 점유였고, ‘구리 스툴'을 포함하는 ‘Shape of River' 시리즈도 정육면체의 정직함이 가진 힘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Yesterday Is Tomorrow에서는 마멸되다 못해 짓이겨지고 파괴된 사물들이 큐브를 몰아내고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광호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실이 분실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는 이유는 전시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빗소리 때문이다. 지하의 사운드스케이프는 ‘디졸브 시리즈’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노이즈를 채집한 것으로, 가마 안에서 구리가 구워지면서 박피되는 소리를 가공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프로세스’에 대한 진술을 중시하는 동시대 미술의 가치기준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고, ASMR적인 성격이 있다고도 말해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억과 경험의 매개라는 의미가 포개져 있다. 관건은 구리 박피되는 소리가 비 내리는 소리와 혼동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불러와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농장 체험은 이광호 서사의 기원이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농촌에서 보낸 시간은 노스탤지어의 거푸집을 형성하여 2007년 이래 고갈되지 않는 생산력의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 이광호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각인되어 있는, 혹은 칠보처럼 녹아붙어 있는 기억의 이미지는 소여물 쑤는 할아버지와 그를 쳐다보는 꼬마 이광호를 등장시킨다. 이 때 후두둑 후두둑 흙 속으로 사라지던 농장의 빗소리는 두 사람을 감싸주는 사운드스케이프였다. (2023년 9월 인터뷰) 가마가 인큐베이트 시킨 기억을 이광호는 소리를 매개로 되새김질하며, 바로 그 자리에서 이광호의 과거와 미래는 접선한다.

 

지붕 위의 구리 닭이 바람 가는 쪽으로 몸을 트는 것처럼, Yesterday Is Tomorrow는 이광호의 방향 전환을 우리에게 표시해준다. 이광호가 그려온 궤적을 아는 사람은 안다. ‘실용성’을 염두에 둔 디자인 오브제도, ‘조형성’에 힘 준 인스톨레이션도, 이광호의 손을 탄 물체들은 디자인 문법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Shape of River’ 시리즈는 ‘가구를 초월한 것’임에도 ‘가구로부터 출발한 것’ 혹은 ‘가구의 재구성’으로 인식되었고, ‘Composition in Blue’ 시리즈는 추상성을 극대화 한 디자인 오브제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 중심에 있는 ‘디졸브 시리즈’는 디자인 프레임으로 접근해서는 초점이 잡히지 않으며, 이는 이광호가 그만큼 디자인 문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예증한다. 이광호는 방향을 꺾어 상품미학의 비탈길을 비껴갔다는 점에서도 자유롭다. 구리와 칠보라는 재료에 대한 매료는 언제든지 아티스트를 물신화의 덫으로 몰고 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졸브 시리즈’는 물신화이기는 커녕 차라리 마티에르에 대한 선전포고이다. 이광호 미학의 두 축인 ‘짜기’와 ‘칠보’가 손끝에서 빚어지는 것이었다면, 신작은 온몸 던져 굴리고, 까부수고, 때리고, 학대해서 얻어진 결과물이다.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의 거장들은 ‘디졸브' 기법을 활용해 복선을 넣곤 했다. 어제와 내일, 현실과 비-현실을 전환시키는 쇼트의 월식을 통해 해석의 좁은 칼날 아래에서 작품의 풍부함이 소진되지 않도록 영원히 뒷문을 열어둔 것이다. 이광호라는 서사에 복선을 까는 Yesterday Is Tomorrow 우리가 이광호를 이해하는 방식을 밑바닥부터 뒤집어보게 만들 것이다.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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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wangho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