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아이즈매거진 I [하우투] 디자이너 이광호 May 15, 2023

Editor Comment

 

다른 사람의 직업에 대해 알아보며, 그 꿈을 좇는 이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어줄 [하우투] 시리즈. 그 여섯 번째 주인공으로 최근 뉴욕에서 개인전을 마치고 돌아온 디자이너 이광호를 만났다. 오픈부터 지금까지 문전성시를 이룬 비이커 성수를 기획한 장본인이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더 콘란샵(The Conran Shop), 디올(dior), 아모레퍼시픽,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등 유수의 파트너와 협업을 하며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펼쳐온 그. 재료의 한계를 넘어 각각의 물성이 지닌 특성과 형태에 주목하여 작품을 선보이는 그는 디자이너, 작가, 공예가 그 무엇으로 불러도 그저 '이광호'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상관 없다고 말한다. 예술을 업으로 하기 쉽지 않은 현실 속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발짝 먼저 발을 내디딘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youlim@eyesmag.com

 

 

 

INTERVIEW

 

KWANGHO LEE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본인 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이광호입니다. 제 소개를 하는 게 참 어색하네요. (웃음)

 

 

|미술을 좋아하고 진로로 선택해도 사실 막상 업으로 삼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처음의 마음가짐은 무엇이었나요.

 

우연이었던 것 같아요. 우연히 친구의 추천으로 미대에 가볼까라는 생각이 시초였죠.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생각이 처음 들었고 재수를 해서 대학에 입학했어요. 금속공예를 하고 싶었는데 지원한 대학 중 홍익대학교를 유일하게 붙었어요. 기대도 안 했는데 말이죠.

 

미대를 간 뒤에는 계속 관련된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구체적이거나 이 직업군의 수익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고 그냥 막연한 생각이었죠. '만드는 걸 꾸준히 하면서 평생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갖고 시작을 했고, 모든 게 참 우연처럼 '일단은 시작하고 정 안 되면 그때 가서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생각과 기대 이상으로 기회가 열렸고 그래서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 시작할 때 해외 여러 사이트에 포트폴리오를 직접 보냈다고 들었어요. 역시 실행력이 중요한 걸까요.

 

포트폴리오를 보냈다기보단, 그때 당시 유행이었어요. 졸업 작품 전시를 하고 해외 디자인 블로그에 작품을 보내는 게 유행이라 형들 따라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엄청난 건 아니고, 학생들 간 빈번했던 일이었기에 저도 자연스럽게 했어요.

 

 

|어머니가 뜨개질하는 모습에서 받은 영감이 작업 방식의 시초라고 들었어요. 재료가 가진 본연의 특성에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옛날에는 TV나 테이블 위 혹은 택시 좌석 등에 크로셰 커버가 있었어요. 그걸 보다 보니 나도 한 번 짜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졸업 전시 조명 수업 때 처음 실천하게 되었죠. 전선과 전기, 전구로 뭘 만들까 하다가 크로셰처럼 꼬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히 작업을 하게 되었고 기대 이상으로 운이 좋았죠. 다음이 걱정이 될 만큼 모든 게 유유히 흘러갔달까요. 모든 게 감사하죠.

 

 

 

|예술을 업으로 하는 이들 중 유학을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어요. 작가님은 어땠나요.

 

 

처음엔 저도 가고 싶었죠. 작업을 하다 보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동경을 하게 되니까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어 나중으로 미루게 되었어요. 그리고 둘째 아이를 낳은 뒤에는 진지하게 '외국으로 이민 가서 생활하면 어떨까? 작업하면 어떤 분위기일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또 타이밍이 안 맞아 막상 실천하진 못했죠. 이번에 뉴욕에서 전시를 했는데, 뉴욕에 가보니 진짜 여기서 작업하면 어떨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전에는 시야도 좁았고, 두려움도 많았는데 지금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뉴욕의 특별함에 매료되었달까.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꼭 가서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여전하죠.

 

|이번엔 비이커 성수의 공간을 디자인했어요. 비이커 성수는 두 공간의 접점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햇빛이 쫙 내리쬐는 통창과 건물 사이의 빈 공간 역시 눈길을 끌었고요. 비이커와 협업하게 된 시작부터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성수동에 오랜 기간 작업실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 비이커 성수를 기획하는데도 그러한 경험이 도움이 됐을 것 같기도 하고요.

 

 

건축부터 인테리어까지 다 맡아서 했는데, 제가 모르는 전문적인 분야는 함께하는 팀이 맡아서 했죠. 건물은 원래 두 건물이 따로 있었고 그전에 브랜드 쇼룸으로 활용되면서 건물을 이어 재설계되었어요. 그리고 그걸 계승해 비이커 성수가 들어섰죠. 처음 비이커 측에서 연락이 왔고, 그 뒤 공간을 찾다 그곳으로 선정되었어요. 제가 2009년부터 성수동에서 작업을 해와서 이번 작업 의뢰가 오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변화하는 성수의 변천사를 아는 사람이니.

 

 

성수동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로 비이커 성수가 되지 않길 바랐어요. 처음 성수동에 왔을 땐 막 대림창고가 들어서면서 공장형 인테리어, '한국의 브루클린'이란 타이틀이 부상했죠. 지금도 많이 개발됐는데 앞으로 더 될 것 같아요. 연속적으로 발전 가능성은 있는데, 미워질 가능성도 다분해요. 전형적인 모습으로 개발이 되니깐요. 지금으로선 성수동의 특별함은 '지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공장 단지에 슬쩍슬쩍 어우러져 대비가 좋았는데, 지금은 정말 많은 것들이 생겨나서, 예전의 매력은 조금 흐릿해지지 않았나 싶죠.

 

 

그렇기에 비이커 성수가 '성수동'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비이커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특색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성수동이라고 불릴만한 무언가는 이미 사라졌기에, 비이커만의 무언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게 오히려 비이커 성수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비이커 성수라고 특별할 게 아니라, 비이커는 비이커고, 비이커가 성수동에 새 매장을 오픈했다는 흐름이 정확하죠. 가짜 러프함을 굳이 내새우긴 싫었어요.

 

 

 

|한 인터뷰에서 전시를 기획하다 즉흥적인 면에 빠져 초기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을 본 적이 있어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러한 ‘즉흥적인’ 면모는 없었을까요.

 

 

이번에는 굉장히 큰 프로젝트이기도 해서 즉흥적인 면을 보이긴 어려웠어요. 제안했을 때부터 구현하고자 한 걸 확실하게 전달했고, 최대한 이야기한 대로 시각화하려고 노력했죠. 저희는 만드는 사람이기에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만, 시안으로 관계자분들을 설득시키는 일은 사실 쉽지 않아요. 상상으로 전달하긴 어려우니까요. 렌더링해서 보이는 모습은 실제와 굉장히 다른데, 그것만으로 평가되니 이 부분에서 조율하고 타협했어요. 시안은 차갑거나 인더스트리얼 무드가 느껴진다고 들었는데, 되레 그런 단어는 지양하고 배제하였으며 결과물이 절대 그렇게 나올 리도 없었죠.

 

 

다른 제 작업을 할 때는 손으로 만드는 작업이니 사실 그때그때 많은 게 달라져요. 만들다가 이렇게 하면 더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그런 방식은 제가 사용하는 재료나 접근 방식이 유연해서 가능한 것 같아요.

 

 

 

|본인이 생각하는 비이커 성수의 핵심 포인트는.

 

 

'반짝이는 젊음'이라는 키워드를 만들어서 제안했을 때, 규정되지 않는 단어 '젊음'이 좋았어요. 각자의 '젊음'이 다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여러 의미를 지니기도 하니까요. 누군 여길 봤을 때 '어 여기가 재밌네', 또 누군 '여기서 사진 찍고 싶네'라는 각자의 생각이 만연한 거죠. 모든 것을 계산해 '여기가 포토존이고, 저기가 계산대입니다'라고 정해놓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제 작업과 연관되는 스타일도 아니었어요.

 

 

사실 처음엔 '인스타그래머블'한 포인트 벽을 만들어달라고 요청받았는데, 저희가 의도하는 건 한 벽이 아닌 모든 부분이 새롭고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 될 것이다고 말했어요. 한 공간 속에 그런 이미지가 여기저기서 재생산되는 게 바람이었죠. 20대, 30대, 40대의 젊음 등 각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로이 느끼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 그게 바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죠.

 

 

|펜디, 이솝, 앤트러사이트, 아모레퍼시픽, 디올, 스와로브스키, 보테가 베네타, 더 콘란샵 그리고 비이커 등. 다채로운 카테고리를 넘나들며 러브콜을 받고 협업을 전개하고 있어요.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질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작업에 임하나요. 또 앞으로 재미난 프로젝트를 기대해 봐도 될까요.

 

 

한 브랜드 매장의 공간 디자인을 의뢰받아 진행 중이에요. 내년에는 또 개인전을 열 거라 그것도 준비하고 있고요. 새로운 협업이 제안 올 때마다 재미있어요. 계속 개인 작업만 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있는데, 협업을 할 때에는 또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고 그 브랜드를 알아가고 새로운 재료를 써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후에 제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죠. 그렇기에 단순히 협업이라기보단 유익한 경험이에요.

 

 

 

|벌써 디자이너로서 15년차를 넘어섰어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작업한지 17년이 됐네요. 저도 참 신기해요. 시간이 금방 가버려서 어느새 이렇게 된 건지. (웃음) 아직도 할 게 많고 못 해본 경험들도 많은데, 그래서 그 시간들이 긴 것 같으면서 짧은 것 같기도 하고요. 작업과 별개로 제 나이도 마흔이 넘어가면서 제 나중이 궁금해져요. 제가 60살이 되면 어떤 작업을 할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런 궁금함으로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인 거는 평생 직업처럼 할 수 있는 일이라, 노년의 삶에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 시간동안 매 순간이 새롭고 행복할 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그렇고. 그럼에도 수많은 용기와 모티베이션으로 또 하루를 살아가곤 하는데, 작가님은 어떤가요

 

 

아직은 번아웃이나 이 일이 싫어진 적은 없었어요. 아마 중간중간 이번처럼 새로운 기회나 협업을 통해 또 다른 경험을 하면서 환경이 달라지고 그렇게 자연스레 넘어갔던 것 같아요. 또 아빠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도 있고요. 사실 혼자 살았다면 '예술가 병'에 빠졌을지도 모르죠. (웃음) 이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제 작업을 계속 보여줄 기회가 있는 것이 감사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제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참 고마워요.

 

 

|하루 루틴은 어떻게 되나요.

 

 

아홉시 반쯤 출근해서 여섯시에 퇴근해요. 딱 그 시간에만 작업을 하고 있죠.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렇게 루틴이 정해져버렸네요. (웃음) 아이를 낳고서는 모든 게 아이 위주로 바뀌었어요. 아이들이랑 같이 성장을 한 것 같다니까요.

 

 

 

|번외로,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스는 어디일까요.

 

 

처음 성수동에 왔을 때는 서울숲도 자주 갔는데, 지금은 너무 사람이 많아 잘 못 나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성수동이 여전히 제일 좋긴 해요. 제 작업실이 있는 성수동이 좋은 거죠. 변해가는 모습도 흥미롭고 교통도 편하고 여기에 익숙해졌다랄까요.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 어떤 기운을 전달하고 싶나요. 혹은 작품을 보고 이렇게 느꼈다면 좋겠다던가.

 

 

이 역시 앞서 말한 대로 정해지지 않았으면 해요. 제가 의도한다고 해도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겠고, 저의 단편적인 모습, 제 하나의 언어로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죠. 그렇기에 애초에 모든 걸 정해두지 않으려고요. 누군가가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각자의 몫이에요. 무의미해요. 규정하는 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평이 있을까요.

 

 

처음으로 코엑스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어떤 유명하신 분이 외국 디자인을 흉내 내는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 2007년에. 그때 그 말에 오기가 생겼고 그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요. 저를 단단하게 하면서 돌아보게 한 말이었죠. 정말 '외국스러운' 게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스물일곱 살 코엑스 전시장 때 제 모습이 생생해요. 나를 환기시켜주면서 초심을 돌아보게 해주는 말. 안 좋은 평이었지만 저에겐 지금까지 긍정적인 영향으로 남아 있어요.

 

 

|마지막으로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말이 있다면.

 

 

꾸준히 흔들리지 않고 계속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어요. 수익이 없었으니까요. 다만, 아예 동떨어지는 분야에서 한 건 아니었어요. 영화 소품 제작을 한다던가, 지금 이 직업을 갖는데 도움이 되는 분야에서 일했어요.

 

 

목표가 있으면 잘 선택을 하고 꾸준히 가는 게 참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예기치 않은 기회가 올 수도 있어요. 사람마다 각자의 순간은 다르고, 누구나 그런 때는 있을 거예요. 저도 그런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때 힘들어서 놓쳤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겠죠. 그러니 힘들지만 버티고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게 중요해요. 모든 경험은 다 의미가 있고, 또 어떤 인연이 될지 몰라요. 저만 봐도 그렇다니까요.

 

 

 

https://www.eyesmag.com/posts/152163/Interview-Kwang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