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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phie, 2006, Oil on board, 13.3 x 30.5 cm
  • Oliver and Isaac, 2004, Oil on canvas, 121.9 x 213.4 cm
  • Path #1, 2006, Oil on canvas, 243.8 x 182.9 cm
  • Elizabeth, 2006, Oil on board, 14 x 30.5 cm
  • White Pines, 2003, Oil on canvas, 167.6 x 228.6 cm
Alex Katz Sep 05 – Oct 07, 2007 | Daegu

1 알렉스 카츠는 1927년 뉴욕 브룩클린에서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였던 이삭 카츠는 교양과 학식을 갖춘 사람이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겸손한 인물이었고 그의 어머니 시마 카츠는 2차 세계 대전 후 나치스 요인을 도망시키는 활동을 벌였던 비밀 조직 오데샤에서 활동하였고 시를 사랑한 문학적 감성을 지닌 여인이었다. 이삭과 시마 카츠는 1920년대 초 각자 미국으로 이민 왔으며 이 후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퀸즈의 전형적인 서민주거지역에서 남동생 베르나드와 함께 자란 알렉스 카츠는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문학과 예술 그리고 패션에 대한 관심을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키워갔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에만 전념하기를 원했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유독 미술수업에 관심과 열의를 보였던 카츠는 결국 오전에만 아카데미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예술활동만으로 진행되는 우드로우 윌슨 여름학교Woodrow Wilson Vocational Hign School에서 수업을 받는다. 그리고 거기서 고대 조각을 드로잉 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1946년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쿠퍼 유니온 대학Cooper Union college of Art, Architecture and Engineering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회화수업을 받게 되었고, 대학에서 카츠는 뉴욕화단의 존경을 받는 모리스 캔토Morris Kantor로부터 당시 유럽 화단을 주도하던 전위적인 예술형식을 배우게 된다. 3년 동안 쿠퍼유니온의 회화수업을 마친 카츠는 캔토의 추천으로 메인주의 스코히건 회화 조각스쿨Skowhegan School of Painting and Sculpture, Maine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다. 캔토의 수업에서 드로잉에 의한 회화를 배웠다고 회고하는 카츠는 스코히건에서는 자연으로부터의 회화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1)
1950년 카츠는 스코히건에서의 외광풍경화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일생을 화가로 살도록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지각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즐기며, 자신이 본 것을 화폭으로 옮기는 과정은 희열에 가까운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카츠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미술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2 "회화란 어떤 점에서 공동의 노력의 결과라 하겠다." Alex Katz, 2002 2) 알렉스 카츠가 졸업한 이후의 시기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미술과 유럽에서 건너온 입체주의를 비롯한 전위적 미술양식이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여전히 피카소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미국에서는 잭슨 폴록의 등장으로 미국미술이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추상표현주의와 색면추상이 미국화단을 주도하던 이 시기에 알렉스 카츠는 여전히 구상주의적 회화를 그리고 있었다. 초기 다섯번의 갤러리 개인전이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하자 형편이 어려워진 알렉스 카츠는 작업을 하기 위해 액자공방에서 조각가로 일했으며, 1950년대까지 난방도 되지 않는 집에 살면서 병원을 가거나 새 옷을 사 입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스코히건Skowhegan, Maine에서 시각 경험으로부터 화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기 전까지 그는 스튜디오 안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 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코히건에서의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시각경험은 곧바로 그에게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알게 하였다.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대상은 알렉스 카츠 회화의 주제가 되었고, 23세가 되던 해에 카츠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순간적인 시각 경험을 화폭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그룹을 연상케 하는 카츠의 외부세계에 대한 태도는 설명을 생략한 단순화된 형태와 흔들리는 윤곽을 가진 인물로 드러났다. 하지만 카츠는 곧 대상의 윤곽을 안정시켰고 1955년에는 밝은 색종이 조각을 조심스럽게 배열한 콜라쥬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콜라쥬 작업은 알렉스 카츠로 하여금 대상을 단순화시키는 시각을 갖게 하였고 또 단순화된 형태를 하나의 독립된 색면단위로 보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동시대 미술경향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매우 신중하고도 포용적인 태도를 취한 알렉스 카츠는, 제2세대 구상회화들에서 보여지는 반(半) 구상적 제스춰들 예를 들면 초벌칠을 한 것 같은 속도감이 느껴지는 표면이 얇은 이미지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하였고, 팝 아트 작가들로부터는 매스 미디어로부터 얻은 정확한 윤곽과 평평한 색채를 모방하였다. 그 결과 화면 속 인물들은 3차원의 공간에 놓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감을 느낄 수 없는 2차원의 평면적 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초기 작업에서 카츠는 대상을 강렬한 단색의 배경 앞에 두는 것을 즐겨했는데, 색면추상회화로부터 빌려온 공간감을 제거한 단색의 배경은 2차원의 세계로 응축된 3차원의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평면화된 특징적인 공간을 우리는 'Katzian'이라 부른다. 3)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작된 알렉스 카츠의 회화는 독창적이었으며 이로써 그는 다른 동시대 인물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양식을 갖게 되었다.

1960년대 초, 알렉스 카츠는 1950년대 회화적 감성을 가진 그림들과 완전히 결별하였고 팝 아트 요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그림은 거리의 광고판(빌보드)을 닮아갔다. 부드러우면서도 급격한 이미지의 강조와 공허한 과장으로 가득한 팝의 이미지들은 거리의 광고판을 떠올리게 하였는데, 거대한 스케일의 광고이미지는 멀리서도 그 내용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하는 속성을 갖고 있었으며 팝 아트의 이미지와 빌보드의 거대한 스케일의 결합은 그 자체의 웅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에게 친밀하게 다가왔다. 1976년 알렉스 카츠는 빌보드 형식에 그의 회화가 갖고 있는 정제된 이미지를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고 1977년, 처음으로 그는 23명의 여인의 얼굴을 그렸다. 대부분이 옆모습이고 그 중 몇 명만이 4분의 3 측면상인 이 23명의 여인의 얼굴을 담는 작업에서 그는 광고판 이미지가 갖는 형식을 빌려왔고 이 작업에서 대상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확대함으로써 빌보드와 유사한 시각 전달효과를 얻어 내었다. 4)

시선을 집중시킬 만큼 강조되고 때로는 과감하게 생략되는 인물들의 허공을 응시하는 눈동자와 차갑게 굳어있는 입가의 미소는 고대인물상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전통적인 분위기를 획득하고 있으며, 인물의 평면적인 머리모양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도적인 효과들은 대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일반적인 방식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되는데, 우리가 관습적으로 대상을 보고 지나치는 것으로부터 감상자의 시선을 그려진 대상의 표면에 좀 더 머물게 하고자하는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그려지는 대상의 심리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것, 즉 대상에 대한 주관적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객관적 대상으로 전환시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하는 알렉스 카츠는 그려지는 대상과의 의도적인 감정적 거리두기에 대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이 누구인지 또는 그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아니라 자신이 그리기를 원하는 대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하는 것만이 필요했었다고 말한다. 5)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카츠는 화면 속 대상과의 복잡한 관계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는 그리는 대상을 인물에서 꽃으로 옮겨 왔다. 그는 꽃이라는 대상을 고독한 존재 또는 자의식이 강한 군집의 하나로 보았으며 메리골드나 잔디 위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봉선화 그리고 울타리에 가득 핀 장미 등이 그의 새로운 주제가 되었다. 부분을 확대해서 그린 꽃 작품들에서 카츠는 장대함과 세부, 고요함과 소란스러움 사이의 교감을 시도하였고, 커다란 캔버스 위에 횡으로 늘어선 카츠의 꽃들은 폴록의 뿌리기 페인팅을 떠올리게 한다.
1968년 페어필드 포터Fairfield Porter는 "카츠의 페인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경험을 기억하게 한다, 대상에 대한 첫 번째 시각경험을 떠 올리게 한다." 고 말한다. 또 카츠를 '빛의 화가'라 하면서 카츠가 바라보고 화면에 기록한 대상들로부터 근원적인 생생함과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세상은 그의 그림으로부터 시작한다." 6) 고 말한다. 카츠의 회화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이 있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활력을 고요하고도 낮은 음색으로 담고 있으며 이것은 그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살아있는 의식을 대변한다. 카츠는 자신의 회화를 통해 시각 세계의 적극적인 감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빛의 주제에 의한 여러 가지 변주곡으로 드러나는 카츠의 회화는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좀 더 차분한 분위기로 가라앉는다. 빛에 의한 이미지의 선명함은 점점 사라져 갔고 때로 침침하거나 희미해져 갔다. 알렉스 카츠의 후기작 시리즈인 'Man in White Shirt'는 1996년 시작한 것으로 폭이 좁고 수직이 강조된 이 페인팅들에서 인물들은 머리 부분과 흰색 셔츠를 입고 앉아있는 상체 윗부분만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들은 왼쪽으로 기대어 자신들의 오른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는데, 이런 인물의 자세와 시선은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볼 수 있는 대응균형자세Contrapposto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신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 자세는 카츠의 회화가 갖는 평면적 인물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반면 2000년 초기 카츠의 작품은 계절이 변화하는 모습과 주변인물을 조용한 긴장감으로 채워가고 있다.

3 알렉스 카츠는 캔버스의 표면이 젖은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wet-on-wet 이라 부르는 카츠의 이러한 제작과정은 각각의 작품을 단번에 제작하도록 강제하는데 때문에 캔버스에 칠해지는 각각의 색들은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고 번지면서 새로운 톤을 만들어 낸다. 시간의 제한을 갖고 제작되는 카츠의 작업은 그 자체로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하며, 실제로 크기가 매우 큰 대작의 경우 12시간을 휴식 없이 그리기도 한다. 카츠는 그의 붓질을 대상의 표면을 막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가능한 즉각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보일 수 있게 생생함을 유지하고, 물감을 이용해 그린 제스츄얼 드로잉Gestural Drawings은 인물의 얼굴 / 사물의 형상 / 동작 등 순간적이고 생략적인 기록을 위한 것이다.

일단 연필 드로잉이 만족스럽게 끝이 나면 카츠는 드로잉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겨질 것을 예상하여 캔버스와 같은 크기의 갈색 종이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이 갈색종이에 옮겨진 오리지널 드로잉을 카툰Cartoon이라고 하는데, 카츠는 이 카툰을 제작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고 한다. 대상에 대한 기억과 스케치로부터 얻은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카툰 제작 작업은 끝이 난다. 카툰이 완벽하게 제작되면 작은 톱니바퀴로 카툰 위 그려진 형상의 윤곽선을 따라 얇게 칼집을 내고 그런 다음 카툰을 캔버스위에 올리고 목탄가루로 형상의 윤곽선을 따라 가볍게 두드린다. 이로써 카툰을 떼어낸 캔버스 위로는 카툰으로부터 옮겨진 이미지가 남게 된다. 그려질 이미지가 캔버스로 옮겨지고 나면 작가는 단숨에 이미지를 완성한다. 모든 제작과정이 끝나면 오랜 시간이 걸린 준비과정들은 카츠의 'fast light'으로 그려진 이미지로 집중되고 그가 포착하는 빛의 속도는 카츠의 그림에 '고정된 잔상'으로 남는다. 카츠 회화에서 '영원한 본질 Timeless Essence'이라는 것은 그가 추구하는 대상의 객관적 묘사라는 작가의 재현목표에서 벗어나 관념적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직관과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그리고 일관된 그의 실용적 태도는 그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자유롭게 한다. 7)

4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일상의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길 바란다. 나는 사람들이 잠시 동안 만이라도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Alex Katz, 1984 8) 
1950년대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알렉스 카츠는 미국 팝 아티스트로 알려져 왔다. 특히 과감하게 생략되고 잘려진 평면적인 인물들은 매스미디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확대되고 강조된 이미지를 연상시켰고 이러한 이미지의 혼돈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알렉스 카츠를 팝 아트의 창시자라기보다는 팝을 계승한 또는 발전시킨 별 의미 없는 팝의 후계자로 보게 하였다. 하지만 알렉스 카츠는 팝 아트와 자신의 회화를 분명하게 경계 짓고 있다. 팝 아티스트들의 이미지가 이미 만들어진 기성의 이미지들-레디메이드-중 그들이 찾아내고 선택한 이미지를 변형이라는 과정을 거쳐 탄생시킨 것이고 이렇게 탄생된 이미지가 변형의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본래의 이미지는 여전히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공동의 것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반면 알렉스 카츠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선택한 대상을 이미지화 한다. 즉 카츠의 이미지들은 직접적인 관찰과 선택에 의한 주관적 이미지라는 것이 그를 팝 아티스트들과 구별 지을 수 있는 경계가 되는 것이다.

알렉스 카츠는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화가였지만 회화는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경험의 세계라고 잘라 말한다. 또 그는 자신의 회화를 통해 '미'의 문제를 끈질기게 다루고 추적하고 있다. 어쩌면 오래된 미학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시각 경험과 감성에 의존하는 그의 미적 세계는 형식과 주제를 동일한 명쾌함으로 풀어나감으로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는 남아있는 시간동안 어떤 것이라도 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을 화면에 담을 것이며 또 아름다운 예찬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큐레이터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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