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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Vaporizer), 2019, Acrylic, lacquer and cotton on canvas, wood, 201 x 151 cm
  • F(N), 2019, Acrylic, lacquer on canvas, wood, 301 x 211 cm
  • F(Sketch), 2018, Acrylic, lacquer and pencil on canvas, wood, 181 x 131 cm
  • Courtesy of the artist & Leeahn Seoul © Shi-Woo Lee
  • Courtesy of the artist & Leeahn Seoul © Shi-Woo Lee
  • Courtesy of the artist & Leeahn Seoul © Shi-Woo Lee
David Ostrowski Menschen, Bilder, Emotionen Apr 03 – May 18, 2020 | Seoul

리안갤러리 서울은 독일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독창적인 추상회화를 선보이고 있는 데이비드 오스트로스키(David Ostrowski)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사람, 그림, 감정)을 2020년 4월 3일부터 5월 18일까지 관객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오스트로스키 작가는 2004년에서 2009년까지 뒤셀도르프의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학했으며 2006년부터 독일을 비롯한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의 활발한 전시를 통해 독일을 대표하는 유망 중견작가로 부상하고 있다. 2000년대 그의 초기작은 주로 표현주의적이고 스타일리시한 화필의 구상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2014년에는 유화 작업을 거부하고 추상화로의 급격한 화풍의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이는 유화가 계속해서 수정을 거듭하면서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바로 이 ‘오류, 실수,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것, 불완전하고 미숙한 것’을 회화적 모티프로 채택했다. 사실 모더니즘 회화에서 선, 면, 색채는 화가의 고도의 정신성과 내면을 전달하는 표현적 기호가 되었다. 오스트로스키는 이러한 기존 회화의 교조주의적이고 사변적, 현학적인 면을 거부하고 오류나 실수와 같은 무의미, 무가치성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F》 연작에서 회화 공간은 무이자 공허, 빈 공간일 뿐이다. 여기에서 ‘F’는 독일어 Fehler(failure, error), 즉 실패, 실수를 뜻한다. 거의 비어 있는 이 공간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나 연필로 마치 낙서를 하듯이 빠르게 그어 나간 선들만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러한 선이 하나의 표시(mark), 흔적으로서 자신의 표현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모더니즘 회화와 달리 작가는 회화 공간이 작가 자신의 자기표현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가능한 한 예술적 테크닉을 배제하고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순간적으로 선을 그어 나감으로써 실수나 오류를 만들어 낸다. 비록 오른손으로 그리지만 마치 왼손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사실 캔버스 공간은 주로 흰색이거나 검정, 노랑 등의 모노톤의 빈 공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빈 공간은 아니다. 두텁게 혹은 얇게 칠하거나 뿌린 듯한 아크릴 물감의 다양한 붓 자국과 질감은 빈 공간의 미묘한 변주를 느끼도록 한다. 특히 이러한 표면 효과는 군데군데 덧붙인 종이, 리넨 조각들을 통해 화면에 공간 분할을 야기하며 세밀한 깊이감마저 나타나게 한다. 흰색 톤으로 된 회화의 경우 파란색 스프레이로 속도감 있게 그린 선의 유동성은 실수와 우연적 구성의 묘미를 드러내며 무가치의 미학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사실 빈 공간, 여백 등은 한국을 포함한 동양 미학에서 익숙한 개념이다. 여기에서 빈 공간은 완벽한 무의 세계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유동하는 기로 충만한 세계, 즉 잠재적 에너지의 공간이다.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의 경구(aphorism)인 ‘Less is more’와 같이 작가 자신의 표현성을 최소화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아닌 관객 스스로 작품 자체에 내포된 잠재적이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유로운 상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저자의 죽음’과 같이 오스트로스키는 어떤 대상을 표현하거나 고정된 상징적 의미가 없이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작가가 아닌 관객에게로 전환된 이 열린 해석이란 물성의 조형적 측면, 그리고 의미화 작용의 측면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즉 ‘사람, 그림, 감정’이라는 전시 표제와 같이 그의 회화는 사람과 사람, 감정과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이 된다. 사실 회화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늘 인간과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재현적 회화에서는 대상이 되는 인간의 외양과 함께 감정까지도 나타내고자 했으며, 대상이 사라진 추상회화에서도 인간의 본질적 정신성이나 작가의 내면적 감정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오스트로스키는 자신이 우발적으로 창조한 물리적 실수의 표식을 통해 고정적 내러티브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들 스스로의 감정을 반영케 한다. 작가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파란색은 실제로 작가가 가장 싫어하는 색인데, 이를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그 색과 친숙해지려 했으며, 바다, 하늘, 물 등과 같이 그 색에 부여된 일반적 의미와 상징성에서 벗어나 관객으로 하여금 다른 방식으로 읽히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가 실수라고 말하는 이 푸른 선들은 빈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에너지의 표상으로 볼 수도 있으며, 불규칙적이고 우발적인 리듬을 유발하며 빈 공간의 무료함을 깨뜨리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회화 공간의 중심에 치우치거나 가장자리를 에두르며, 때로는 화면 전체를 가로지른다.

이와 같이 오스트로스키의 작품에서 빠른 래커 칠의 속도감이나 리드미컬한 조형적 활력은 시각예술의 외적 범주인 음악적 요소를 상기시키는데, 이는 실제로 작가가 작업 시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요소들은 어떤 점에서는 해독 불가한 기호나 상형문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작가는 F 시리즈에 문자 N을 도입하거나 ‘덜 비어 있다’, ‘가장 아름다운 당신의 발에 있는 것으로 마무리’와 같은 다양한 문장의 사용을 통해 위트와 해학을 보여 준다. 이는 작가가 작품 실현 당시 생각한 아이디어를 적어 놓거나 읽고 있는 책 등에서 따온 것이다. 이렇게 음악, 문자, 언어와 같은 미술 외적 요소의 도입과 함께 일반적 회화에서 배제된 실수와 오류에서 미적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한 것은 힙합, 재즈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낙서에서 출발한 그라피티(graffiti) 미술과의 유사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라피티와 같이 거리의 예술에서 출발해 순수예술로 편입된 것과 같이 오스트로스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존 예술 문법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의 회화에 대한 독창적 접근법은 전시 방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화이트 큐브에서 회화는 벽의 중앙을 차지하고 관객을 압도하고 군림하듯이 우러러보도록 한다. 그런데 오스트로스키의 회화는 이러한 관습적 위치에서 벗어나 매우 낮게 설치되어 관객의 시선, 신체와 거의 동등한 존재로서 일대일로 교감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3미터가 넘는 두 점의 대형 회화를 포함한 작품들은 벽을 떠나 마치 조각이나 설치작품과 같이 갤러리 공간의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다. 작가는 작품이 설치된 곳의 주위 환경까지도 잠재적 회화의 일부로 수용하고 또 그것을 효과적으로 존재하도록 하는 데에 관심을 둔다고 했다. 즉 캔버스 내부 공간의 부차적 요소들과 표현성을 최소화시킴으로써 관객은 자유롭게 작품의 주위를 돌며, 회화 공간 내, 외부의 맥락을 넘나들며 느끼고, 상상하면 된다. 이렇게 일반적인 상식을 깨뜨리는 작가의 의도는 대형 회화작품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카펫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거리낌 없이 뉴질랜드산 양모로 제작된 고가의 카펫을 밟고 지나가서 회화작품을 보도록 유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 스스로 반달리즘(vandalism)을 선동하는 것인가? 이는 앞서 작가가 오류나 실수도 모티프로 수용했듯이 고급 예술과 비예술, 순수미술과 일상,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를 해체하고자 한 것이다. 작가에게 더 이상 회화는 난해한 예술가의 이론이나 철학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매체가 아니다. 옳든 그르든, 심오하든 단순하든 사람들의 감정이 교류하는 만남의 장이다.

 

글. 성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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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vid Ostrow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