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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r conditioner outdoor unit and Apartment Complex, 2016-2017, Oil on canvas, 112 x 112 cm
  • Fruits and Walnuts on the Table, 2018, Oil on canvas, 65 x 91 cm
  • Large Window and Fan, 2017-2018, Oil on canvas, 112 x 145.5 cm
  • Studio shelves, 2017-2018, Oil on canvas, 91 x 116.8 cm
  • Plant on the Floor, 2017-2018, Oil on canvas, 53 x 65 cm
Changnam Lee On the Wall - Drawings & Paintings Nov 15 – Dec 29, 2018 | Daegu

리안갤러리 대구에서는 2018년 11월 15일부터 12월 29일까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 풍경이나 일상적 사물들을 온화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미묘한 빛으로 포착한 회화 작업으로 한국 구상화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창남 작가의 개인전<On the Wall - Drawings & Paintings>을 선보일 예정이다.

금호동 옥탑의 협소한 작업실에서 만난 이창남 작가는 자신이 구상화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신의 존재가 종교인들에게 당연한 것이듯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담담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그는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추상화가 예술계의 주류로 인식되는 경향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구상화에 대한 탐구를 고수하고 있다. 작가에게 회화란 여전히 대상이 없는 상상계, 영적, 관념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감각으로 식별 가능한 구체적 사물과 시공간을 담아낼 수 있는 매체여야 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장소를 찾아다니거나 현실적인 사회, 문화적 이슈를 다루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오로지 자신이 매일 직접적, 즉각적으로 마주하는 바로 눈앞의 사물이나 상황들의 시각적 현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창남 회화의 주된 주제는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그의 작업실 안에 있는 여러 사물들, 즉 찻잔, 유리컵, 과일 등의 정물 소품은 물론 실제로 사용하는 탁자, 벽시계, 창문과 커튼 그리고 작업실 밖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에어컨 실외기, 특별할 것 없는 아파트 전경 등이다.

작가는 특히 이러한 사물들의 형태 그 자체보다는 그것들의 고유한 색채와 빛에 주목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색채의 연관성을 추적하면서 형태와 공간을 구축해 나가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의 방식과 유사해 보이지만 이창남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관찰한다. 일반적인 구상회화가 그러하듯이 3차원의 입체적 사물들을 실제처럼 보이도록 2차원의 평면으로 옮겨 놓는 '트롱프뢰유(trompe-l'œil, 눈속임)'가 아니다. 그는 현실에서 보이는 형태를 입체가 아닌 다양한 뉘앙스의 빛과 색채로 이루어진 여러 평면적 단편들의 조합으로 인식하여 접근한다. 즉 자신의 망막에서 나타나는 시각적 현상에서 이미 평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전시 표제인
은 이러한 작가의 세상에 대한 관조와 예술적 접근 방식을 단적으로 암시한다. 즉 벽 자체는 입체적인 건축 구조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회화의 평면성을 오롯이 인정한 상태에서 빛과 색채 표현에 더욱 집중한다. 따라서 그의 회화에서 형태는 빛과 색채의 다채로운 변화를 드러내는 매개체이자 한계점일 뿐이다.

이창남은 계획적인 구도나 밑그림 작업 없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사물이 포착되는 순간, 그것을 중심으로 즉흥적, 직관적으로 새로운 색채 평면 공간을 구성해 나간다. 그렇게 한 사물에서 출발하여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망을 구축하면서 하나 둘 추가되거나 배제되고, 작가의 무의식적 조화의 축에서 어긋나는 경우 다른 사물로 대체되고 생략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창남의 회화는 현재성과 현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캔버스의 화면에 무작위 상태로 배치된 사물들은 작가가 붓질을 하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순간의 기록이다. 작가가 사물과 대화하는 그 순간의 햇빛 강도와 뉘앙스, 그 빛의 작용이 반영된 색감의 미묘한 변화가 시각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성과 현장성은 어느 한 순간의 인상을 빠른 필체로 잡아내는 인상주의 회화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이창남의 회화에는 여러 순간들로 이루어진 시간의 지속성이 반영되고 내포되어 있다. 끈질기게 대상화된 사물과 주변 공간을 관조하면서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밝고 온화한 색감으로 표현되던 어제의 대상들은 오늘 현재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채도로 탈바꿈하여 차곡차곡 쌓인다. 부분적으로 그러한 상반된 색채의 변화가 드러나 보일 듯 말 듯 모호한 긴장감을 이룬다. 때문에 일상적 사물을 현실 그대로 표현한 이창남의 회화는 언뜻 친숙한 듯 보이지만 묘한 낯섦이 공존하고 있다.

현재의 순간들이 중첩된 이러한 회화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실질적 감각을 통해 심미적으로 교감하는 작가 특유의 방식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리얼리즘적 회화는 사진을 토대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는 사진은 이미 셔터를 누르는 순간 과거가 되어 버리고 조작된 상태일 뿐이며 실제 눈으로 본 것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고 역설한다. 진정한 현재란 어느 한 순간에 정체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변화를 담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창남의 회화는 사진적 묘사가 아닌 영상에 가까운 회화이다. 상상해 보라 ! 벽에 영사된 밝은 빛의 풍경이 다음 장면에서 잿빛 풍경으로 뒤바뀌는 모습을……. 작가는 이를 자신의 캔버스 공간에서 동시적으로 보이도록 한다. 끝없이 재생되는 현재를 자신의 시감각으로 채취한 빛과 색채를 통해 시각화하며 영원성을 부여한다.

언뜻 보기에 3차원의 사실적 형태 묘사에 치중한 듯 보이지만 애초에 벽과 같은 평면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그의 작품에서 사물들은 3차원 공간 안에 존재하는 개별적 객체라기보다는 작가의 시각 틀 안에 존재하는 색채와 빛의 연계성으로 이루어진 관계들의 합이다. 그런 점에서 작품 속의 공간은 사물을 위한 배경이라기보다는 그 또한 하나의 형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사물과 배경이 은은히 뒤섞이며 그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하고, 또 다른 작품에서는 사물과 배경이 동일하게 세세히 표현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창남은 자신이 늘 바라보는 좁은 작업실 주변의 협소한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화 공간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내고 회화적 공간으로 재창조한다. 다시 말해서 회화를 통해 입체이자 평면이고 입체도 아니고 평면도 아닌 새롭게 확장된 세계를 펼쳐 내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회화 작업과 함께 연필과 구아슈로 작업한 드로잉 작업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작가는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드로잉을 가장 자유롭고 직관적인 창조 행위라고 여기며, 자신의 회화 역시 드로잉적 회화라고 규정한다. 이창남의 작품은 통기타와 포크 선율이 울려 퍼지듯 레트로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며 빛과 색채의 세계와의 내밀한 정서적 교감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글. 성신영